2021년 1월 17일 / 주현 후 제2주


마음에 방향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1~13절)

 


     오늘도 솔로몬 왕 이야기입니다. 열왕기상에 나오는 솔로몬 이야기를 통해, 지도자의 공동체를 향한 목표와 목적이 흔들리게 될 때, 어떤 일을 벌이게 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리더라는 한 개인이 가져야 할 신앙적, 윤리적 덕목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공동체의 선을 위해 애쓰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지난 첫 주에 솔로몬이 꾼 꿈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시는지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삶에 복을 주시고 그가 치리하는 나라에도 더불어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말년에 그의 마음과 태도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물론, 그 일은 예고된 결말이기도 했습니다. 솔로몬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1.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했습니다.

     솔로몬은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했다고 전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솔로몬의 마음이 방향을 달라진 것입니다. 그의 사랑이 방향을 바꾸어 이방 여인들에게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 사람들과 서로 통혼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것을 염려하시고 금하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혼인정책을 통해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혼인으로 아내들만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들도 같이 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잘 알고 계셨기에 금하셨던 일입니다. 결국, 솔로몬은 율법을 어겼습니다. 그의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까지 돌려놓으며 다른 신들을 따르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견고했던 솔로몬이었지만 그 마음이 돌아서게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돌아섰고, 아버지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갖지 못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이방의 아내들을 들였을 뿐인데 하나님을 사랑했던 마음에 변화가 생겼고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2. 이방 신들을 섬겼습니다.

 

     솔로몬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분별력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아내로 들인 여자들에게 마음이 쏠리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위해 신전까지 지어 주었습니다. 솔로몬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을 때에는 일천번제도 드릴 만큼 정성스런 예배자이며 하나님 앞에 지도자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백성을 염려하기도 한 성군이었지만 그의 마음이 방향을 잃고 헤매어서 과녁을 벗어나니 이런 일들이 생긴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서도 ‘방향’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향하도록, 하나님을 향해 있도록 계속 권면합니다.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자 그의 몸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들에게로 향합니다. 마음의 변화가 이방 신들을 섬기는 지경까지 이른 것입니다.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 어떤 대상을 예배하는지가 우리의 마음의 방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3.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솔로몬 한 사람의 마음이 달라진 것뿐인데 그 변화는 나라 전체에 영향을 끼칩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타락하니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백성들입니다. 그만큼의 몫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고 복을 주십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수많은 약속들이 다 복인데,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행할 때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얻을 수 있는 보상적 복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 살려면, 당연히 그 나라의 법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게 하나님의 백성이니 당연히 하나님 백성의 삶의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타락을 개인 한 사람의 타락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타락과 동일한 선상으로 봅니다. 솔로몬 한 사람 때문에 나라가 분열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이처럼 성경 속 하나님이 세우신 인물 한 사람은, 한 공동체를 대표하면서 그 공동체의 흥망성쇠도 상징합니다. 그 한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 하나님께로 마음을 향하는 일, 그것은 개인이 아닌 그 공동체가 함께 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반드시 우선순위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 순위에 우리의 마음이 따라 갑니다. 마음이 가는 그것이 우리의 보물입니다. 때론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게로 향하면서 다른 신들을 용납하게 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안고 시작한 새해입니다. 마음이 분주하고 혼란스럽고 무거움도 여전합니다. 그런데 이 때,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향한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 마음에도 방향이 있는데, 지금 마음이 향해 있는 곳으로 우리 몸이 덩달아, 우리의 삶과 더불어, 그 쪽을 향해 가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신 여러분이 힘을 내 주십시오. 그래야 교회들이 삽니다. 그리고 나라가 삽니다. 여러분 마음의 방향이 삶을 이끕니다. 임마누엘!



2021년 1월 10일 / 주현 후 제1주


그 성전만 성전인가?

(열왕기상 8장 22~30절)

 


     오늘 본문 열왕기상 8장은,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봉헌한 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전을 봉헌한 솔로몬의 마음과 그 기도 내용에 집중합니다. 오늘은 그렇게만 볼 것인가? 의문을 제기해 봅니다. 그 시대에만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기억한다면, 그의 성전건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겠지만, 시대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 오늘날에는 어떤 중요성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2021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읽혀져야 할 것입니까?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그 첫 물음을 이렇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우리에게도 성전인가?


     엄밀히 말해, 그 성전이 우리에게는 성전이 아닙니다. 역사적, 지역적, 영적 의미로도 성전은 아닙니다. 솔로몬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성전일까요? 거룩한 영이신 하나님께도 그 곳은 성전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은 건물로 지어진 한정된 공간이 결코 아닙니다. 그 분이 거룩한 영이시고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신데 우리가 만든 어느 특정 공간에만 계시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성전이라면,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이 세상이 전부가 그 분이 계실 수 있는 성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건축물로 지어진 특정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면 어디든지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얼마나 웅장한지, 얼마나 멋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성전이 성전으로서 하나님이 거하실 곳인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을 건축하고 싶은 그 마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을 둘 장소입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이 둔다는 뜻은,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곳을 의미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하고 그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성전을 봉헌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거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인간이 건축한 성전에도 감히 오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솔로몬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니 기도를 들으시고 간구에 응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하며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에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안에 와서 기도하든, 이방인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든, 주의 이름이 거기에 있고,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므로, 이들의 부르짖음을 불쌍히 여기셔서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심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펜데믹으로 인해 제대로 함께 모이지 않는 지금에, 다시 교회에 모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더욱 더 우리가 성전 안에서 살고 있는지를 되물어 보아야합니다. 우리의 성전은 어디입니까? 진정으로 우리가 짓고 봉헌해야 할 성전이 어디일까를 묵상합니다. 

     솔로몬이 정성껏 준비하고 열심히 세우고 지어서 하나님께 드린 성전, 오늘날은 무엇으로 확장되었습니까? 결국 어디까지 왔습니까? 솔로몬이 만든 하나님의 성전에서, 우리 몸까지 왔습니다. 그럼,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으로 살도록 돌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그 곳이 어디인가?’라는 물음보다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도 질문을 해야 합니다 ‘예배하는 나는, 하나님나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가?’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바벨론이 와서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허물어뜨렸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저 이름만 남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면, 코로나가 바벨론이 될 것이고 우리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어려운 때, 성전으로 지어진다면, 코로나는 초대교회가 받았던 박해가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을 만듦으로 우리 한국까지 그 선교의 씨가 뿌려졌던 것처럼 새로운 열매를 맺기 시작할 것입니다. 

     코로나가 참 아프지만 기회입니다.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간, 다시 견고해 질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2021년 1월 3일 / 성탄 후 제2주 (신년주일)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3장 4~15절)

 


     새해 첫 주일입니다. 어렵사리 지난 한 해를 건너왔습니다. 올해도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서로 격려하며 잘 이겨 나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신년주일 첫 본문은 열왕기상 3장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를 이어가며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섰는지를 그려주는 본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마음에 드는 기도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를 마음에 들어 하셨던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고민하며, 하나님이 꾸시는 꿈을 우리도 같이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왜 솔로몬의 기도가 마음에 드셨을까를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가 마음에 드셨다면 우리의 기도 방법이나 내용에도 분명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무엇을 보신 것일까요?


1. 그의 정성스런 예배를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정성스럽게 예배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정성껏 예배를 드린 솔로몬을 먼저 보신 후 꿈에 나타나 그에게 소원을 물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진실한 마음, 정성스런 예배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 예는 초대교회 당시 고넬료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방 군대 장관이었던 고넬료에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가족 모두를 구원하십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고넬료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드린 기도와 삶을 지켜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예배하며 기도하고, 삶으로 보여 주는 열매를 보고 계신다면, 그래서 우리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한다면, 우리의 태도를 고쳐야 할 것입니다.


2. 그의 백성들을 향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어떤 마음을 보신 것입니까? 그의 태도(attitude)를 보신 것입니다. 백성을 향한 어진 왕의 태도가 눈에 띕니다. 자신의 마음에는 온통 백성들을 어떻게 치리하면 좋을지 그 생각 밖에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구한 것이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였습니다. 그의 마음이 사사로운 탐욕에 있지 않고, 백성들을 잘 치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에 있음을 보시고 하나님도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위치에 서게 되고 그 공동체를 이끌어야 한다면, 그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할 것입니다.


3. 그의 기도 내용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예배하는 모습도 보시고, 그의 마음도 읽으시고, 그가 하는 기도 내용까지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구하는 것을 들으시고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기도를 구체적으로 듣고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 내용을 다 듣고 솔로몬이 구한대로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까요? 우리의 필요와 욕구가 아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필요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기도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핵심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솔로몬이 부와 권력과 장수를 구하지 않고 먼저 그 나라를 어떻게 지혜롭게 다스릴까를 구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적용하면 될까요?  

     솔로몬이 응답 받은 기도에 관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믿음의 전반을 다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가 드리는 예배도 보셨고, 백성을 향한 마음도 보셨고, 구체적으로 구하는 기도도 들으셨습니다. 

     올 한 해 솔로몬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삶에서 간증되고, 그 삶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함께 살도록 초청하기를 바랍니다.


2020년 12월 27일 / 성탄 후 제1주 (송년주일)


네 가지 결단

(느헤미야 13장 1~3절)



2020년 마지막, 송년 주일입니다. 올 한해 어려운 가운데 믿음으로 잘 버티신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느헤미야 마지막 강해입니다. 느헤미야가 고국에 돌아와 무너진 성벽을 52일 만에 완공하고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하며 온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결단을 합니다.(느10장) 그런데 이 모든 일을 다 정리하고 느헤미야가 잠시 페르시아에 간 사이에 이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없는 사이에 유다 백성들의 삶이 예전 그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성전을 함부로 모독하며 십일조를 내지 않고 안식일도 범하고 이방 사람들과 통혼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가 아주 단호하게 결단하며 이 모든 일들을 치리합니다. 

느헤미야의 이 결단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영적인 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느헤미야 말씀을 마무리하며 그의 결단이 오늘날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요구되는 마음이라 여겨집니다. 


1. 거룩하게 살기로 결단하십시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와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 것을 권면합니다.  

당시 제사장 엘리아십은 영적 지도자로 유다 백성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살아가도록 도와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산발랏과 함께 성벽 재건하는 일을 방해하고 대적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결탁을 합니다. 친한 정도가 아니라 십일조와 헌물들을 넣는 성전의 큰 방까지 도비야에게 내어 준 엘리아십의 태도를 보면서, 너무 쉽게  세상의 가치에 마음을 놓아주는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봅니다. 

이에 느헤미야가 유다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아라!’ 요구를 합니다. 2021년 새해에도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하게 살기로 결단합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며 거룩하게 살기를 결단합시다.


2.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기로 결단하십시오


두 번째,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는 결단입니다. 물질이 반드시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물질로 사는 존재가 아님을 당당히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의 본래적 성격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영적 생존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유지됨을 고백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결단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결단이기도 합니다. 물질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는 물질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사는 사람이다’라고 믿음으로 결단할 때입니다.


3. 예배시간을 구별하기로 결단하십시오


세 번째, 안식일의 회복을 위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유다 백성에게 안식일을 기억하고 분별하도록 권면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규례가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소중히 지키고 구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예배드리기가 어려워지면서 ‘예배’라는 무게감이 가벼워졌습니다. 실시간 중계로 예배드리며 ‘현장성’이 무너졌고, 녹화된 예배를 보며 예배를 관망하고 시청하고 평가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안식일 규정의 회복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시간에 대한 구별’로,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을 마음대로 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따로 떼어 구분하라고 하신 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4. 가정을 믿음으로 세우기로 결단하라


마지막 네 번째 결단은, 유다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약속했던 이방 민족과 통혼하지 않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경책입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의 자녀와 결혼시킴으로 순수혈통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자녀들은 자신들의 언어도 잊어버렸습니다. 이에 느헤미야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합니다. 느헤미야의 결단은 아주 단호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을 믿음으로 정결케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점점 더 그 일을 해내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믿음을 지키는 정결성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구하며 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2021년이 나흘 남았습니다. 


우리 모두 새롭게 다시 결단합시다.

1. 거룩하게 구별되어 살겠습니다.

2.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겠습니다.

3. 예배시간을 구별하겠습니다

4. 가정의 정결함을 유지하겠습니다. 


2020년 12월 20일 / 대강절 제4주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시 84:1~12, 엡 2:20~22)


오늘은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 넷째 주일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창립된 지 14주년 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교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생각하고 떠올리는 교회의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과정과 함께 광야에서 시작한 성막을 통해 경험한 것으로부터 바벨론 포로기를 겪으며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드린 예배의 기억과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 이루어진 초대교회의 역사까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전해진 복음 전파의 역사가 전 세계를 돌아서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수 천 년의 역사가 지나갔다고 해도 이 세상을 시작하시고 이끄시고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상실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팬데믹으로 혼란해진 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고 우리들의 교회는 어떻게 서야 할까요? 이제 14주년 된 우리 교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교회이며 거룩한 성전이라고 할 때, 우리가 더 건강한 교회로 서기 위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우리의 성소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소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교회라고 한다면,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거룩한 곳, 성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모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의 회복은 그 분의 부르심을 강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성소의 회복에는 내적 성소와 외적 성소가 있습니다. 먼저 회복해야 할 내적 성소는 내 안에 이미 와 계신 주님의 자리를 강화시키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이 성소가 되는 것으로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사시는 공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회복해야 할 외적 성소는 성도들이 현재 믿음 생활을 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교회이어야 한다는 말씀은 아니지만 우리가 지금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교회가 우리에게 성소인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함께 울며 웃으며 고민하며 경험하는 외적 성소로 우리 교회가 자리를 잡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더 바라기는 우리 교회가 여러분들에게 성소의 기억으로 남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의 골방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소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장소를 의미한다면, 골방은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과만 만날 수 있는 은밀한 곳으로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입니다. 골방이란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사적 공간으로 하나님과만 만나고자 마련하는 시간과 공간을 모두 의미합니다. 시대가 혼란하면 혼란할수록, 우리의 마음이 분주하면 분주할수록 우리는 골방이 더욱 필요합니다. 골방 없이는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하는 거룩한 장소 뿐 아니라 홀로 하나님과 은밀하게 만날 수 있는 ‘나의 골방’이 필요합니다. 각자의 거처에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교회가 골방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회복해야 합니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장소와 시간으로 교회에 오면 하나님과 은밀하고 조용하게 만나는 골방의 경험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골방에서는 하나님을 만나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골방은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지만 타인의 아픔을 안고 주님과 단독으로 서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여러분의 기도의 골방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골방을 회복하십시오. 


3. 임마누엘 하나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84편의 마지막 10~12절에서 시인은 주님 계신 곳에서 살고 싶은 심정을 표현합니다.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성전의 진정한 의미는 장소나 건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임재 사건에 의미가 있습니다. 성소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은혜의 장소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그 친밀함이 있습니까? 여전히 낯설고 먼 것은 아닙니까? 우리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당신의 백성을 비추시고 보호하시는 해가 되시며, 우리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막으시는 방패가 되십니다. 당신을 사모하는 백성들에게 은혜와 영화를 주시고 정직한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교회가 걸어 온 14년,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우리의 교회가 여러분의 성소가 되고, 골방이 되고, 임마누엘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어려운 때를 살지만, 반드시 회복합시다.


2020년 12월 13일 / 대강절 제3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느 12:44~47)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보내는 대강절 셋째 주일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렇게 교회력을 지켜가는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해 내기’를 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기억해 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은, 정말 잊고 살지 말아야 할 것은 잊고,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했던 작업이 그런 것입니다. 성벽 재건으로 끝나지 않고 온 백성들을 다 불러 성벽을 하나님께 올리며 예배하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된 데에는 이런 느헤미야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공동의 기억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의 기억이란 함께 공유하는 신앙적 기억을 의미입니다.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함께 하는 공동체를 같이 경험하며 남기는 기억들이 공동의 기억인데, 일차적인 장은 가정으로 가장 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학교나 교회 등 사회 안에서의 기억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기억해 낼 공동의 기억도 필요합니다. 그 기억의 장이 예배이고 아이들에게는 교회학교이고 어른들에게는 교회공동체입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며 다시 회복하려고 했던 예배도 그들이 역사적으로 기억하는 공동의 경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따라 해마다 절기를 기억하고, 그 법에 맞추어 삶을 살아온 이유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역사적으로 공동의 기억을 가지고 이어져 왔기 때문임을 느헤미야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벽을 재건하면서도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낭독하고 함께 예배하며 신앙적인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 간 것입니다.  

지금의 코로나 시대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신앙적인 공동의 기억을 남겨 줄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커서 ‘나 어릴 때 교회에서...’라는 스토리를 엮어 낼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가정예배를 드리는 경험도 좋은 기억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믿음의 기억은 분명히 지금까지 살아온 신앙의 삶을 한층 더 풍요하게 하고 또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2. 생명 지향의 삶이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처음 고국 땅에 도착했을 때, 그는 유다 백성들을 살리고 싶어서 애를 썼고, 몇몇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 그의 목표와 비전이 생명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살리고 싶은 비전입니다. 느헤미야가 이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나아갔기 때문에 성벽도 재건하고 백성들을 예배 자리에 나오게 하며 그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성벽 봉헌 예배를 드린 후에도 느헤미야의 관심은 오로지 유다 백성들을 살리는데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들이 계속된다고 해도 우리를 일깨워 살아가게 하는 힘은 생명에 있습니다. 이 생명지향의 삶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명입니다. 


3. 형제 사랑의 삶이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이야기는 자신을 사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형제를 사랑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형제사랑을 새 계명으로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지키며 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사랑으로 시작한 느헤미야 한 사람의 변화가 유다 백성 전체의 변화에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원리를 압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미 오신 예수님께서 그 삶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자신의 삶에만 집중했다면 예루살렘 성벽은 여전히 허물어진 채 그대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삶에서부터 민족이라고 하는 좀 더 확장된 자신의 조국을 향해 열려 있으므로 인해 큰일을 해 낸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한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의 헌신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를 물으며 지금부터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억하는 일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살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마음을 함께 품을 수 있는 생명지향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욱이 그 지향은 나에게 국한된 삶이 아니라 더불어 내 형제 이웃 온 세계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십시다.


2020년 12월 6일 / 대강절 제2주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가?

(느 12:27~30)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 두 번째 주일에 느헤미야가 성벽을 봉헌하는 이야기를 함께 봅니다. 바벨론에게 무너진 성벽은 140여 년이 넘게 그대로 방치되다 느헤미야가 재건합니다. 목표는 성벽재건에만 있지 않았고 무너진 신앙을 다시 구축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성벽을 보수하고 재건한 후 하나님께 봉헌하는 예식을 갖는 것은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어렵게 성벽을 재건해 낸 것도 기쁨이었지만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것도 기쁨이었습니다. 성벽을 봉헌하며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회복한 유다 백성들을 통해 우리 또한 영적 즐거움을 회복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즐겁게 성전 봉헌식을 준비하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며 여러 고비를 넘기고 지속적으로 문제에 부딪혔지만, 그때마다 기도하며 잘 이겨냈습니다. 이제 성벽 봉헌식을 준비하는 내내 그에게는 감사와 찬양과 기쁨이 넘칩니다. 그리고 봉헌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레위 사람들과 찬양하는 사람들, 제사장들을 다 준비시킵니다. 성벽 위에 올라서 행렬을 지어 성벽 주위를 돌아 성전으로 돌아오는 의식을 합니다. 두 개의 행렬로 진행되는데, 한 행렬은 에스라를 선두에 둔 행렬이요, 다른 행렬은 느헤미야가 맨 끝에서 따라가는 행렬입니다. 자신이 앞서지 않고 뒤에서 백성들을 돌보는 겸손함도 보입니다. 에스라가 이끄는 대열과 느헤미야가 이끄는 대열은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다시 만나며 봉헌의 마무리가 하나님을 향합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의 사람이 사는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재건하고 기쁘게 봉헌하며 즐거움을 회복한 모습을 통해 우리의 즐거움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에 회복되는 즐거움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2. 기뻐 찬양하며 성벽 위를 걷다


느헤미야의 마음에는 성벽을 재건하고 봉헌하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봉헌을 준비하며 느헤미야가 계획한 것은 성벽 위를 밟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룬 일이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을까요? 그들의 찬양은 기쁨의 소리였고 그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었습니다. 찬양하는 기쁨의 초점이 하나님께 있었지만 기뻐하고 찬양하는 그들에게도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쁘시면 우리도 기쁩니다.


3. 하나님이 즐거워하게 하시다


그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심히 즐거워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고 기록합니다. 부녀와 어린 아이들도 즐거워했고 그 도시 전체에 울려 다른 곳까지 멀리 기쁨이 퍼졌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이 기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요즘의 엄혹한 현실을 바라보며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때 물어야 할 구체적인 질문은 기쁨이 어디에서부터 나오는지 그 근원을 정확하게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기쁨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지키는 이 절기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기쁨은, 현실이 달라지거나 문제가 없어지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그 기쁨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좇다가 실패하고 결국 십자가 지신 예수님 앞에서 다 도망가 버린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 길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얻게 되는 온 세상의 구원의 기쁨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이 말합니다. 

현실을 보면 아직도 막연한 소망,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면 보이게 되는 영광의 내일! 우리 함께 기다리며 견뎌내십시다.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에 참 소망을 전합니다.


2020년 11월 29일 / 대강절 제1주


잊을 수 없는 이름 

(느 11:3~9)


1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번 주부터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강림절이 시작됩니다. 올 한해는 코로나와 맞서 싸우느라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게 지났습니다.


다시 느헤미야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도시로 재정비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배치하는 말씀까지 나눴습니다. 예루살렘에 정착할 첫 부류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나머지 주민들은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이 와서 살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 부류로 제사장과 레위 가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들과 성전 봉사자들, 노래하는 사람들 등의 봉사자 가문 목록이 등장합니다. 느헤미야가 얼마나 치밀하고 섬세하며 대단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는지 인구를 배치하는 곳에서 그대로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 첫 번째 특징은, 예루살렘에 아무나 들어간 것이 아니라 혈통적으로 순수하게 정통성을 이어간 사람을 중심으로 먼저 들어가게 했다는 것과, 그리고 배치를 지도자, 제사장, 레위인, 기타 봉사자들 순서로 언급하여 영적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과 자원함입니다. 도시를 세우기 위한 백성들의 자발적 순종들이 있었습니다. 인구의 10분의 1이 왔으니 대표성을 지닌 백성들이었고 그들의 헌신이 새 역사를 씁니다. 

세 번째 특징은, 모든 것이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겼고 심지어 성전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명단까지 기록했습니다. 물론, 성경이니까 성전 중심의 진행, 성전 중심의 사고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코어(core)가 되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있던 세월 동안 그 코어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와 성전을 중심으로 잃어버렸던 삶의 기초와 중심을 다시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느헤미야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 12장에서 다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언급하면서 성벽을 봉헌하기 전에 그들 명단을 공개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중심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이 명단들을 읽으며 몇 가지 묵상해야 할 제목들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나의 이름은 어떤 기억으로 남겨져 있는가?입니다.

긴 명단들은 느헤미야 당시에 말씀 앞에 순종한 사람들로 기억되는 사람들입니다. 지도자들의 이름이 그러하고 제사장이나 레위 가문의 이름들이 그렇습니다. 거룩한 이름입니다. 우리의 이름도 하나님이 아시는 이름이고, 그 분의 기억에 아름답게 새겨져야 할 이름입니다. 잊혀지면 안 되고 지워지면 안 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 그 분의 생명책에 반드시 기록되는 이름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지금 나의 중심, 코어는 어디인가?입니다.

장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회복한 느헤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들이 되찾아야 할 것을 회복한 것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 중심에 주님이 계시면 단단하게 설 수 있고,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 안에도 골방을 만들고 내가 머물 수 있는 장소 또는 시간을 성별하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 중심을 잃지 않으시길 기도합니다.


세 번째,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순종할 수 있는가?입니다.

순종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무엇에 순종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묻기 전에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올 해를 정리하며 이 부분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내려놓고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순종하면 되겠습니까?’ 순종은 조건 없이 수락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추진력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 강림절 또는 대림절이라고도 합니다만, 이 첫 주에 우리는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의 이름이 되시고, 우리의 중심이 되어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던 주님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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