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일 어린이주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무엘 상 1장 19~28절     

  

       5월, 참 푸르른 계절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를 성경적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다르고 각 가정과 부모마다 그 철학이 달라 언급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서는 어떻게 자녀들을 대하라고 하시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존중하되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고 훈육하라는 말씀이 주를 이룹니다. 물론, 성경이 전승되고 기록된 시대가 오늘날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변할 수 없는 것은 자녀를 바라보는 성경적 관점입니다. 자녀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신 시각에 기본 바탕을 세우고 그 위에 구약을 재해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구약에서는 이 아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일, 말씀으로 온전하게 훈육하는 일을 강조합니다. 가르치고 꾸짖고 훈육하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그 근본에는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는 정신이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훈육보다는 그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예수님의 관점에서 봅니다. 마가복음 10장에 예수님이 친히 안수하며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며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려 옵니다. 그들을 꾸짖는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달려오는 아이들을 친히 축복하시는 아름다운 장면이 나옵니다. 구약의 근거로만 본다면 아이들은 그저 훈육 대상이지만 아이들을 귀히 여길 줄 아셨던 예수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귀하게 여긴 예수님처럼 그들을 존중하며 그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도록 책임져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2. 오늘의 본문을 통해 고백해야 할 것은?


       오늘 본문을 통해 사무엘의 출생 이야기를 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 사무엘을 등장시키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지만, 그 어머니 한나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통해 오늘의 부모와 교회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함께 보고자 합니다.


       1)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배경이 오늘날과는 다릅니다.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고, 한나는 그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자녀가 없어 늘 마음이 어렵고 슬펐습니다. 남편의 사랑으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한나도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 자녀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아이를 구할 때부터 아이를 주시면 평생 이 아이가 하나님께 속하여 살도록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약속하여 응답을 얻었으니 나 역시 하나님께 이 아이의 평생을 드리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우리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되뇌어야 하는 고백입니다. 한나처럼 떼어 맡기겠다는 것은 아니고 심정적으로 영적으로 그 아이가 어디에서부터 온 존재인지를 망각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자녀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고 키우는 것입니다. 그의 평생을 우리가 다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삶의 모든 과정에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3)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고백해야 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사사시대를 마무리하는 영적 리더가 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회복시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왕정시대를 열게 하십니다. 한나는 이런 아들을 낳은 어머니입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비로소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합니다. 개인적 서러움에서 벗어나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깊게 고백합니다. 자녀가 없어 슬펐던 한 여인이 이제 주신 자녀로 말미암아 기쁨을 회복할 뿐 아니라 그동안 드리지 못했던 신앙고백과 찬미를 올립니다. 이제 자신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가지고 계십니까? 부부가 되어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어려움 가운데 계십니까?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과 자녀를 통해 더 깊은 고백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 상 1장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21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23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020년 4월 26일 부활절 제3주 


부활 없이 복음은 없다 2

고린도전서 15장 50~58절     

  

       지난 주에 이어 부활 복음을 함께 나눕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며 과학으로도 수용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복음에 부활이 없이는 복음이 아닙니다.

       지난 주 말씀을 통해 복음의 내용에 십자가와 부활이 있고 그 능력은 자기부인과 하나님의 은혜, 그 지향성은 하나님 나라라고 정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는가?입니다. 부활의 복음이 우리 삶에서 어떤 실천력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을 닮기로 결정하라    

 

       철저한 유대인이며 유대주의자였던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도 바울의 유대주의적 종교의 신념은 웬만한 자극과 도전으로는 쉽게 파기될 수 없이 견고했습니다. 그런 그를 무릎 꿇게 하신 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그렇게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복된 소식입니다.

       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고난과 죽음, 그리고 고난과 죽음을 이긴 부활의 영광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없다면 본질은 빼고 전하는 메시지가 됩니다. 십자가는 죄의 해결을 의미하고 부활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믿음의 삶을 구체화시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이 그것입니다.

 


2.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을 선포하라


       우리 인생에 누군가 닮고 싶은 대상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인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삶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기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보여주신 삶이 우리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될 때 필요한 자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 분처럼 살아가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을 때,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아버지를 드러내고 나타내신 분이십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에게도 부활의 삶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 역시 예수님이 사신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매 순간,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결정하셨을까?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 닮기를 결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3. 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보기로 결단하라


       우리는 혈과 육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잇지 못합니다. 우리 육체는 어차피 벗을 장막입니다. 썩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썩을 것을 심어야 썩지 아니한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 육체를 벗어버릴 장막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벗어던질 장막에 온 힘을 쓰고 심겨져 다시 태어날 육체에만 관심을 갖다 주님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실 때, 떡과 포도주를 나누고 함께 드셨습니다. 그 떡과 포도주는 우리 입으로 먹고 마시며 언제 어느 곳에서나 먹을 수 있는 물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그 떡과 포도주를 당신의 생명으로 기억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몸, 이것은 반드시 죽고 썩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복음에는 이 몸이 필요합니다. 몸그 자체가 아니라 그 몸이 죽어야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몸은 결국 부활의 복음으로 견디며 살다가 다시 살아나야 할 몸을 떠올려야 하는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이 그냥 그 몸 그대로가 아니라, 몸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그 몸을 주시고 다시 부활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야 견고하게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활하신 승리의 주님을 믿고 흔들리지 않으시기를 권면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2020년 4월 19일 부활절 제2주 


부활 없이 복음은 없다

고린도전서 15장 1-11절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현재의 삶에 말씀과 신앙의 역사를 되짚게 하여 새로운 힘을 얻게하는 것이고, 믿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과거의 역사를 오늘의 삶에 새롭게 재연하고 장차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절기를 형식적으로만 지키면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지난 주일 부활절로 보냈습니다. 코로나19가 부활절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뀌어진 일상에 적응도 해야하지만, 그럼에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 신앙’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신앙의 고백이며 삶입니다.

       4월의 남은 두 주간 동안 사도 바울이 남긴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통해 이 땅에서 부활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부활신앙을 토대로 한 복음의 의미와 능력에 대해서 나눕니다.



1.  복음의 내용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철저한 유대인이며 유대주의자였던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도 바울의 유대주의적 종교의 신념은 웬만한 자극과 도전으로는 쉽게 파기될 수 없이 견고했습니다. 그런 그를 무릎 꿇게 하신 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그렇게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복된 소식입니다.

       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고난과 죽음, 그리고 고난과 죽음을 이긴 부활의 영광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없다면 본질은 빼고 전하는 메시지가 됩니다. 십자가는 죄의 해결을 의미하고 부활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믿음의 삶을 구체화시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이 그것입니다.

 


2. 복음의 능력 자기 부인(self-denial)과 하나님의 은혜


       인간의 죄를 대신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죽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다른 이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죄에서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만나자, 그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며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기로 작정합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게 된 능력은 십자가를 만나야 깨닫게 되는 능력입니다.

       삶의 주어가 바뀌는 것, 복음을 통해 표현되는 첫 번째 고백입니다. 그 모든 것을 자랑할 수 있는 결과의 주어가 자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만난 하나님의 은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 제대로 드러납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 그는, 내가 사는 이유, 내가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다 그리스도를 위함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자기 자신의 자랑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원망도 불평도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약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만나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자랑하게 되지 못합니다. 철저하게 나를 부인하고 나를 나되게 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며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3. 복음의 지향성 하나님 나라


       한국교회에는 그동안 복음의 의미를 축소시키거나 오해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의 안녕과 축복을 구하게 했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내용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절대로 개인에게 집중하고 현세적으로 끝나게 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복음은 그 관심과 목표가 이 땅에만 있지 않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이 완전하게 다스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합니다.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믿음으로 견디며 살아갑니다.

       복음이 지향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복음의 지향점이면서 우리 현실의 삶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구체화시킬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와 죽음을 이기신 부활사건이고 복음의 능력은 우리가 자신을 능히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게 합니다.


       코로나 이후 목회적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를 지향해 가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이 필요한 때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능력으로 이제 우리는 우리만을 위하던 우리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더불어 같이 사는 나라를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2020년 4월 12일 부활주일


부활 소망으로 사는 삶

요한복음 21장 7-14절

     

   

       부활주일입니다. 기독교에서 부활절은 성탄절보다 더 중요한 절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없이 절대로 기독교를 논할 수 없고, 부활하신 주님 없이 믿음의 승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2020년의 부활주일에는 요한복음 21장을 통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분만 살아나신 기쁨의 사건이 아니라 어둠과 죽음을 이긴 모든 인류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부활의 소망이 없으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옛날의 그 자리로 돌아가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게 됩니다. 


1.  부활 소망이 없는 삶 : 물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     

 

       베드로는 예수께서 계셨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을 직접 보고서도 예수님의 부활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친히 찾아 오셨지만 이또한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현실적으로 믿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결국 고향에 돌아가 물고기나 잡아야겠다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실 때, 물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데리고 다니시며 기적도 보여 주시며 늘 가장 가까이에 두셨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통한 복음의 사건들을 그렇게 많이 보여 주었지만 이제 베드로는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표현합니다. 베드로에게 물고기는 생계 수단이었고 다시 현실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제자의 삶은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 물고기 잡고 있는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와 물으십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그들은 ‘없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물고기를 잡으러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너무나 익숙한 삶일지라도 주님을 제외한 채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소망이 없으면 그 삶은 그저 현실에 안주할 뿐 그 너머는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삶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그 현실 너머까지 보게 합니다.


 

2. 부활 소망으로 사는 삶 : 물고기를 구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이 밤늦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소득이 없습니다. 그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말을 듣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을 한 분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이후 밤새껏 물고기를 잡고 돌아온 제자들을 예수님이 먼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들을 먹일 아침을 이미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이 직접 숯불에 물고기를 구우셨고 그들에게 ‘와서 조반을 먹으라’라고 하시자 그제야 예수님인 줄 알아보게 됩니다.

       물고기나 잡으러 가자고 했던 베드로에게 물고기는 더는 주님의 제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삶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물고기 같아 보이지만 주님이 친히 구워주시고 떼어 먹여주시는 물고기는 달랐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주님이 친히 차려주신 떡과 물고기를 먹으며 다시 살 소망을 얻었습니다. 다시 소명을 찾았습니다. 부활의 소망은 그렇게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어둠과 죽음을 이기게 합니다.


3. 부활 소망의 사명 타인을 먹이며 사는 삶

  

       이제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름을 부르시며 마지막 권면을 하십니다. 다른 이들을 먹이는 이로 살라고 권면하십니다. 자신만 먹는 목자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먹이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먹여서 살도록 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다른 생명을 위해 사랑으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삶은 부활의 소망으로 다른 이들, 주님의 양들을 먹이는 삶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그렇게 권면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고난과 죽음 앞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갖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부활의 참 소망으로 흔들리지 말고 견실하여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로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2020년 4월 5일 종려주일


하나님의 긍휼은 생명을 향한다

요나 4:1~11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고난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르신 때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많은 기사와 이적을 보이신 예수님을 알아본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십니다.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찬양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소서”하는 그들의 외침입니다. 그러나 곧 빌라도 앞에 섰을 때는 모인 백성들에게서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못 박으라”고 외치는 잔인한 소리도 듣게 됩니다.               


1. 예수님이 요나를 언급하신 이유는?       


       복음서에 예수님이 요나를 떠올리며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 12:38~41)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악한 귀신이 들린 자들을 고치셨는데 그 일은 유대인들이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합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귀신에 들려 저렇게 귀신을 내쫓는다고 음해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니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정통 유대인들, 유대주의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 몇이 예수를 찾아와 표적을 요구합니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니 그들 수준에 맞춰 대답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요나는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요나 선지자를 통해 니느웨를 구원하신 사건을 예로 들어 구원받지 못할 니느웨도 요나를 통해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면서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요나보다 크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시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요나 이상의 선지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며 이 사순절에 우리의 본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2. 박넝쿨도 사용하시는 하나님


        

      초막을 만들고 그 안에 앉아 있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 그늘을 만들어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십니다. 그리고 이튿날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 먹게 하십니다. 다시 뜨거운 해가 떴고 뜨거운 동풍이 불자 요나는 혼미해질 정도로 견디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자 요나가 또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박넝쿨도, 벌레도, 뜨거운 동풍도 예비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박넝쿨, 벌레, 뜨거운 동풍을 묵상해 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죽음으로까지 이끌 수 있는 엄청나게 큰 폭풍과 풍랑, 큰 물고기를 예비하기도 하셨지만, 때론 박넝쿨이나 벌레처럼 지극히 작은 것까지도 사용하시며 요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신다고 믿는 자입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하나님이 준비하셨다고 믿으며 그것을 은혜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큰 바다와 무서운 풍랑과 커다란 물고기도 사용하셨고 평범한 박넝쿨과 작은 벌레도 사용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사용하신 이유는 요나를 깨우쳐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시고 또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도 알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3. 생명을 향하는 하나님의 긍휼


      요나서에 나타난 요나의 모습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오직 요나 자신을 향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를 향해 계실까요? 요나에게만 집중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생명에 집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생명을 향해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성령 하나님을 우리 안에 살게 하셨습니다.

      떼쓰고 억지 부리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무례하기만 한 요나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긍휼하심의 최고를 보여 주십니다. 박넝쿨 하나 때문에 그렇게도 속상한데 니느웨에 있는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가축들을 아끼는 내 마음은 어떠하겠느냐고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요나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이유는 우리를 살리시는 데 그 초점이 맞춰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이 어려움, 어떻게 이기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받으므로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자가 결국 이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삽시다. 하나님의 긍휼은 생명을 향해 있습니다. 살고 싶으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요나 4장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